2026년 2월 25일 수요일

[2026 밀라노] 쇼트트랙 코너링의 이면: 무릎 측부인대가 견디는 원심력의 한계

 

[2026 밀라노] 쇼트트랙 코너링의 이면: 무릎 측부인대가 견디는 원심력의 한계

2026년 2월 20일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 여자 1500m 준준결승에서 미국의 크리스틴 산토스-그리스월드가 코너 중반부에서 균형을 잃고 쓰러지며 이탈리아의 아리아나 폰타나, 폴란드의 카밀라 셀리에르와 함께 연쇄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산토스-그리스월드의 블레이드가 셀리에르의 얼굴을 스쳤고, 빙판 위에 핏자국이 남았으며, 셀리에르는 들것에 실려 퇴장했습니다.

같은 대회에서 김길리의 극적인 여자 1500m 금메달, 최민정의 7개 올림픽 메달 대기록, 여자 3000m 계주에서의 역전 금메달 등 한국 쇼트트랙의 찬란한 순간들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그 영광의 빙판 위에서 선수들의 무릎이 매 코너마다 어떤 물리적 한계와 싸우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쇼트트랙 선수들의 무릎을 진료하며 수년간 지켜본 정형외과 의사로서, 오늘은 화려한 코너링 기술 이면에 숨겨진 생체역학적 진실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11.12미터 트랙 위의 물리학: 원심력과의 전쟁

쇼트트랙의 본질은 '코너링'입니다. 111.12미터의 짧은 타원형 트랙에서 선수들은 전체 주행 시간의 절반 이상을 코너 구간에서 보냅니다. 올림픽 수준의 선수가 코너에 진입할 때의 속도는 시속 약 45~50km에 달하며, 코너의 곡률 반경은 약 8미터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기본적인 물리학을 적용해 봅시다.

원심가속도(centripetal acceleration)는 a = v²/r 로 계산됩니다. 시속 50km(약 13.9m/s)로 반경 8m의 코너를 돌 때, 원심가속도는 약 24.2m/s², 즉 체중의 약 **2.5배(≒2.5G)**에 해당하는 횡방향 힘이 선수의 몸을 트랙 바깥으로 밀어냅니다.

체중 70kg의 남자 선수라면 코너를 돌 때마다 약 170kg에 해당하는 횡방향 힘이 하체에 가해지는 셈입니다. 이 힘에 대항하기 위해 선수들은 몸을 극단적으로 안쪽으로 기울이는데, 그 각도는 빙면과 50~65도 수준까지 내려갑니다. 손끝이 빙면을 스치는 자세가 바로 이 기울기의 산물입니다.

문제는 이 모든 물리적 부하가 최종적으로 수렴하는 곳이 바로 무릎 관절이라는 점입니다.

코너링과 무릎 외반 모멘트: 측부인대의 역학

쇼트트랙 선수가 좌회전 코너를 돌 때 무릎 관절에서 일어나는 일을 단계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코너 구간에서 선수는 깊은 스쿼트 자세(무릎 굴곡 약 90도)를 유지한 채, 왼발(인사이드 레그)로 빙면을 지지하고 오른발(아웃사이드 레그)을 크로스오버 합니다. 이때 체중과 원심력이 결합된 거대한 횡방향 힘이 무릎을 바깥쪽으로 밀어내는 **외반 모멘트(valgus moment)**를 생성합니다.

경희대학교 기계공학과 연구팀의 웨어러블 모션 분석 시스템을 활용한 연구(Purevsuren et al., 2018)에 따르면, 쇼트트랙 글라이딩 및 푸시오프 구간에서 측정된 무릎 외반 모멘트는 사이드스텝 커팅 동작(비접촉성 ACL 손상의 주요 기전)에서 측정되는 수준과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외반 모멘트에 가장 먼저 저항하는 구조물이 바로 **내측 측부인대(MCL, Medial Collateral Ligament)**입니다. MCL의 표층(superficial MCL)은 무릎 굴곡 25도에서 외반력의 약 78%를 담당하는 일차적 안정화 구조물입니다. 무릎이 신전(펴진) 상태에서는 후내측 코너(POL)와 ACL이 함께 외반 안정성에 기여하지만, 쇼트트랙 선수처럼 깊은 굴곡 상태에서는 MCL이 사실상 혼자서 외반력의 대부분을 감당합니다.

여기에 내회전(internal rotation)이 더해집니다. 코너링 중 경골(tibia)은 대퇴골(femur)에 대해 내회전하면서, ACL에도 복합적인 부하가 전달됩니다. Shin 등(2011)의 연구가 보여주듯, 외반 + 내회전의 복합 모멘트는 각각 단독보다 ACL에 훨씬 더 큰 변형률(strain)을 유발합니다.

역설적 보호 기전: 굴곡이 인대를 구한다

그렇다면 쇼트트랙 선수들은 왜 매 경기마다 ACL과 MCL이 끊어지지 않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한 가지 역설적인 보호 기전이 작용합니다. 바로 깊은 무릎 굴곡 그 자체입니다.

쇼트트랙의 크라우칭(crouching) 자세는 무릎을 약 90도 이상 굴곡시킵니다. 이 깊은 굴곡 상태에서는 인대가 완전히 팽팽해지지 않습니다. ACL과 MCL 모두 무릎이 신전될 때 최대 긴장 상태에 놓이며, 굴곡이 깊어질수록 상대적으로 이완됩니다. 쇼트트랙에서 폭발적인 외반력, 내회전력, 전방 경골 전단력이 동시에 발생하지만 무릎이 깊이 접혀 있기 때문에 인대가 파단 역치(failure threshold)에 도달하지 않는 것입니다.

Kolenc(2019)의 리뷰가 정확히 이 점을 지적합니다. 쇼트트랙의 주요 동작 패턴은 ACL 손상의 기전과 유사하지만, 그 동작이 발생하는 순간 무릎이 굴곡 상태에 있어 인대에 가해지는 실제 부하가 감쇠된다는 것입니다.

쇼트트랙 선수들을 진료하면서 이 역설을 체감한 적이 많습니다. 선수들은 ACL이나 MCL의 급성 파열보다는 오히려 무릎 전방의 통증, 즉 슬개건염(patellar tendinopathy, jumper's knee)이나 슬개-대퇴 통증 증후군(patellofemoral pain syndrome)을 더 빈번하게 호소했습니다. 깊은 스쿼트 자세에서 발끝에 체중을 실으면 슬개건과 대퇴사두근 건에 가해지는 장력이 극대화되기 때문입니다. 엘리트 남자 싱글 스케이터에서 jumper's knee의 유병률이 16.1%에 달한다는 보고도 이러한 부하 패턴과 일치합니다.

보호 기전이 무너지는 순간: 충돌과 예측 불가능성

그러나 이 역설적 보호 기전에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선수가 코너링 자세를 유지하고 있을 때만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쇼트트랙에서 인대 손상이 실제로 발생하는 시나리오는 대부분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충돌로 인한 자세 붕괴입니다. 팩 레이싱의 특성상 4~7명의 선수가 밀집하여 주행하며, 코너 진입부에서의 추월 시도는 빈번한 접촉사고로 이어집니다. 이때 선수의 무릎이 제어된 굴곡 상태에서 예기치 않게 신전되면, 인대의 보호 기전이 사라진 상태에서 전체 원심력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둘째, 블레이드가 빙면에 꽂히는 순간입니다. 쇼트트랙 블레이드(길이 약 46cm, 폭 1.2~1.4mm)가 빙면에 수직으로 걸리면, 발목이 부츠에 고정되어 있어 충격이 경골 원위부와 비골로 직접 전달됩니다. 발목이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면 경골-비골 원위부 골절이 발생하고, 비틀림이 무릎까지 전파되면 측부인대 및 십자인대 손상으로 이어집니다.

셋째, 패드(보호벽) 충돌 시의 비틀림입니다. 코너에서 이탈한 선수가 패드에 발부터 부딪히는 경우, 정지하는 하체와 관성으로 계속 이동하는 상체 사이에서 무릎에 극심한 회전력이 가해집니다.

Quinn 등(2003)의 역학 연구에 따르면, 엘리트 쇼트트랙 선수의 64.2%가 시즌 중 최소 한 건의 부상을 경험하며, 무릎과 발목이 가장 흔한 부상 부위로 보고됩니다. 독일 국가대표팀을 대상으로 한 종단연구(2009~2020)에서도 전체 부상의 69.8%가 하지에 집중되었고, 관절 손상이 의료상담이 필요한 부상의 16.3%를 차지했습니다.

밀라노 2026의 교훈: 속도와 안전의 경계에서

이번 밀라노-코르티나 올림픽은 쇼트트랙의 양면성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한편에서는 김길리가 결승선 두 바퀴를 남기고 아리아나 폰타나를 추월하며 금메달을 확정짓는 숨 막히는 역전극이 펼쳐졌습니다. 최민정은 세 번째 올림픽에서 7개의 메달로 한국 역대 최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에 올랐고, 황대헌은 5개의 올림픽 메달로 한국 남자 쇼트트랙 최다 메달 타이기록을 세웠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셀리에르가 블레이드에 얼굴이 베여 빙판 위에 쓰러져 있었고, 의료진이 흰 천으로 현장을 가리는 동안 관중석은 숨을 죽였습니다.

진천선수촌에서 근무하면서 절감한 것이 있습니다. 쇼트트랙은 '통제된 위험(controlled risk)' 위에서 성립하는 스포츠라는 것입니다. 무릎 굴곡이라는 생체역학적 보호 기전, 케블라 소재의 경기복, 헬멧과 목 가드, 그리고 패드 시스템 등이 겹겹이 위험을 완화하지만, 시속 50km의 원심력과 날카로운 블레이드, 밀집 주행이라는 본질적 위험 요소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스포츠의학의 시선: 예방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쇼트트랙 선수들의 무릎 건강을 위해 강조하고 싶은 몇 가지를 정리합니다.

첫째, 대퇴사두근과 거위발건(pes anserinus) 복합체의 강화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대퇴사두근과 거위발건 복합체는 MCL 복합체의 유효 강성(effective stiffness)을 각각 164%, 108%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근육이 인대의 '보험'이 된다는 뜻입니다. 선수촌에서도 시즌 중 대퇴사두근의 편심성 근력(eccentric strength)과 햄스트링의 동심성 근력(concentric strength) 비율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했습니다.

둘째, 근육 긴장도와 관절 이완성의 개별 평가입니다. 아이스스케이터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피겨 선수의 25.8%, 스피드 선수의 15.2%가 전신 관절 이완성(generalized joint laxity)을 보였으며, 근육 긴장도(tightness)는 발목 인대 손상 및 무릎 건부착부염(enthesitis)과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었습니다. 모든 선수를 동일한 프로토콜로 관리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셋째, 기능적 움직임 평가(FMS)의 정기적 시행입니다. 대회 일정이 빡빡할수록 부상 위험은 높아집니다. FMS 점수의 변화는 근골격계 시스템의 '경고등' 역할을 합니다.

넷째, 코너링 기술의 개별화입니다. 엘리트 선수들 사이에서도 코너 구간의 힘 패턴(force pattern)에는 상당한 개인차가 존재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개인 기록이 좋은 선수들은 코너를 돌 때 발의 압력중심(COP)을 블레이드 후방에 유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무릎에 가해지는 부하 분배와도 직결됩니다.

에필로그: 매 코너마다 반복되는 도전

최민정은 밀라노-코르티나 2026 이후 "올림픽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세 번의 올림픽, 7개의 메달, 셀 수 없이 많은 코너링. 그녀의 무릎이 매 코너마다 체중의 2.5배에 달하는 원심력에 맞서 수천, 수만 번의 외반 모멘트를 견뎌낸 결과입니다.

쇼트트랙 선수의 코너링은 관객에게는 2~3초의 순간이지만, 그 안에는 원심력과 구심력의 균형, 블레이드와 빙면 사이의 마찰, 깊은 굴곡이 만들어내는 인대의 이완, 그리고 강력한 근육이 제공하는 동적 안정성이 모두 압축되어 있습니다.

111.12미터 트랙의 코너는 물리학과 해부학이 교차하는 지점이며, 그 교차점 위에서 선수들은 매 순간 자신의 무릎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의 가장자리를 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코너를 도는 쇼트트랙 선수를 볼 때마다, 아름다움보다 먼저 경외심을 느낍니다.


본 글은 의학적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개별 환자의 진단 및 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References

  1. Purevsuren, T., Khuyagbaatar, B., Kim, K., & Kim, Y. H. (2018). Investigation of knee joint forces and moments during short-track speed skating using wearable motion analysis system. International Journal of Precision Engineering and Manufacturing, 19(7), 1055–1060. https://link.springer.com/article/10.1007/s12541-018-0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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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Shin, C. S., Chaudhari, A. M., & Andriacchi, T. P. (2011). Valgus plus internal rotation moments increase anterior cruciate ligament strain more than either alone. Medicine & Science in Sports & Exercise, 43(8), 1484–1491.

  4. Kolenc, M. (2019). Injuries in short track speed skating. Research in Sports Medicine, 5(5), RISM.000625. https://crimsonpublishers.com/rism/fulltext/RISM.000625.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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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Olympics.com. 올림픽 쇼트트랙: 김길리, 여자 1500m 금메달 획득. 밀라노-코르티나 2026. https://www.olympics.com/ko/milano-cortina-2026/news/kim-gilli-wins-gold-womens-1500m-finals-results-short-track-milano-cortina-2026

  12. Olympics.com. 올림픽 쇼트트랙: 최민정, 메달 7개로 한국 역대 최다 올림픽 메달리스트 등극. 밀라노-코르티나 2026. https://www.olympics.com/ko/milano-cortina-2026/news/choi-min-jeong-becomes-korea-most-decorated-olympian-with-seven-medals

  13. Fox News. Olympic speedskater takes blade to face, stretchered off in frightening moment. Feb 2026. https://www.foxnews.com/sports/olympic-speedskater-takes-blade-face-stretchered-off-frightening-moment

  14. Real World Physics Problems. Physics of ice skating – Short track speed skating analysis. https://www.real-world-physics-problems.com/physics-of-ice-skating.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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